옛날 황해도 해주의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 구슬 같은 샘물이 흘러나오는 옹기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평생 흙을 주물러 항아리를 구워 온 **노기완 옹**이 살고 있었습니다. 해주 옹기는 다른 지방의 검붉은 옹기와는 달리, 백색의 흙 위에 푸른 청화 물감으로 버드나무나 물고기를 소박하게 그려 넣는 특유의 백색 항아리로 유명했습니다.

어느 해 가을, 마을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우물은 바짝 마르고, 사람들의 마음도 황폐해져 갔습니다. 노기완 옹은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며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항아리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며칠 밤낮을 산으로 들로 다니며 해주의 백토(白土) 중에서도 가장 맑고 고운 흙만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사흘 동안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흙을 치대어 공기를 빼냈습니다. 흙이 빚어지면서 그의 단단한 손 끝에서 비로소 모양이 갖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만든 해주 항아리는 형태부터 남달랐습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여 어떠한 시련도 품어낼 듯 듬직했고, 허리로 내려올수록 매끄럽고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며 몸통이 풍만하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노기완 옹은 항아리의 배를 만지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 "항아리의 품이 넓어야 그 안에 담길 사람들의 소망도 넉넉해지는 법이지."
항아리의 겉면에 색을 입힐 차례가 되었습니다.
노기완 옹은 화려한 산수화 대신, 해주 앞바다에서 힘차게 요동치는 **잉어 두 마리**와 언덕길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버드나무 가지**를 푸른 즙(청화)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잉어는 역경을 이겨내는 생명력을, 버드나무는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부드러운 인내를 의미했습니다. 여백에는 '가정평안(家庭平安)'이라는 정갈한 글귀도 정성스레 새겼습니다.
마침내 가마에 불을 지피는 날이 왔습니다.
섭씨 천도가 넘는 붉은 화염 속에서 항아리는 사흘 밤낮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마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항아리가 무사히 깨지지 않고 나오기를 기도했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식어버린 가마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기적 같은 해주 항아리가 서 있었습니다.
은은한 우유빛을 띠는 흰 바탕은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고,
그 위에 새겨진 푸른 청화의 물고기는 마치 살아서 항아리 안을 헤엄치는 듯 생생했습니다. 둥글고 푸근한 항아리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보는 이의 마음에 안도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항아리를 마을 중앙의 샘터 옆에 두고, 며칠 뒤 기적처럼 다시 찾아온 단비를 항아리에 가득 채웠습니다. 아무리 가뭄이 오거나 추운 겨울이 찾아와도,
해주 항아리에 담긴 물은 절대 마르거나 얼지 않았고 항상 맑고 시원한 맛을 유지했습니다. 사람들은 둥글고 푸근한 그 항아리를 바라보며 가뭄의 고통을 잊고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노기완 옹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해주 항아리는 황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단단하고 푸근한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비록 세월의 흔적으로 겉면에 작은 금이 가고 빛이 바랬을지라도, 하얗고 둥근 품속에 푸른 꿈을 품은 그 자태는 오늘날까지도 해주의 옛 이야기를 은은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