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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와 브라질 예술 교류, '현대 트랜스로컬' 프로젝트가 던진 명암과 예술계의 불안

현대자동차가 한국과 브라질의 주요 예술 기관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대규모 국제 예술 교류 프로젝트를 선보이면서,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다양한 시선과 함께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선구적인 예술적 실험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대륙 간의 문화적 접점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한 문화 예술의 지평 확장과 국가 간 가교 역할이라는 긍정적인 면모가 크게 부각된다.
실제로 백남준아트센터와 브라질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미술관 등 유력 기관들이 협력하여 대규모 전시와 학술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 것은 침체된 예술계에 일시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기업 주도의
거대 예술 교류를 바라보는 일각의 시선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자본력을 앞세운 민간 기업의 막대한 영향력이 순수 예술의 자율성과 창작 생태계 깊숙이 개입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우려 때문이다.
특히 공공성과 공익성이 강조되어야 할 문화 예술 지원 구조가 특정 대기업의 글로벌 브랜딩이나 문화적 헤게모니 구축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은, 예술계가 오랜 세월 동안 경계해 온 해묵은 화두이기도 하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지닌 순수한 의도 이면에는 언제나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백남준아트센터와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된다는 소식은 환영받아 마땅한 국제 교류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진정으로 순수한 창작 열정으로 오랫동안 작업에만 몰두해 온 현장의 작가들의 마음은 과연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순수한 예술가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작 기업의 본질적 생리인 이윤 추구와 마케팅 효과만을 저울질하는 듯한 태도는, 예술을 대하는 기업의 자세가 과연 진정성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예술의 본질은
본디 고유의 자율성과 타협하지 않는 비판적 사유에 기반한다. 기업의 자본 지원이 문화 예술계에 실질적인 발전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예술이 거대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거나 검열 혹은 자기검열의 그늘 아래 놓이지 않겠느냐는 현장의 불안감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