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영화, 다가가는 영화, 마침내 구원하는 영화

영화라는 매체가 인류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과연 무엇인가. 스펙터클한 시각적 자극이나 시원한 상업적 쾌감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오늘날,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품에 안았다.
세계 거장의 반열에서 인간과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의 묵직한 행보는 단연 눈부시다. 하지만 영화의 찬란한 영광 뒤에 남은 것은 거대한 트로피의 무거움이 아닌, 무대 위에서 그가 남긴 나지막한 세 마디의 화두였다.
첫 번째 마디: “노동과 관계가 사라지는 시대, 영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 번째 마디는 이 시대에 던지는 차가운 질문이자 자각이었다. 세상은 점차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소외를 정당화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손쉽게 끊어낸다. 노동의 가치가 희미해지고 진짜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던 온기가 메말라가는 시대 속에서, 이 감독은 묻는다. “과연 영화는 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가 던진 이 첫 마디는 예술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윤리적 책임에 관한 통렬한 성찰이다. 영화는 단순히 시름을 잊게 만드는 환상용 도피처가 아니라, 우리가 눈돌리고 싶어 하는 시대의 비극과 인간의 절망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그 무거운 물음표 하나가 묵직하게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 각자의 가슴속에 아프게 꽂힌다.
두 번째 마디: “이 상은 온몸을 내어준 배우와 제작진의 것이다”
두 번째 마디는 타인을 향한 깊은 헌신과 겸손의 고백이었다. 감독 한 사람의 예술적 아우라 뒤에는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견뎌낸 제작진과, 자신의 영혼을 깎아 렌즈 앞에 내어놓은 배우들이 존재한다.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네 배우가 보여준 압도적인 연기 앙상블은 이 감독의 집요하고도 애정 어린 시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의 공을 지우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왕관을 넘겨주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을 담는 영화를 만드는 이의 진정한 태도를 읽게 된다. 인물 한 명 한 명의 깊은 상처와 숨결까지 끌어안아 화면에 숨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서로를 향한 믿음과 기다림이었음을 그 한 마디로 입증한 셈이다.
세 번째 마디: “이 상은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
마지막 세 번째 마디는 예술가로서의 멈추지 않는 다짐이자 여정의 선언이었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숱하게 트로피를 들어 올려 온 거장임에도 그는 안주하지 않는다. 수상이라는 완성된 답안지를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마침표가 아닌 또 다른 물음표로 받아들인다.
빛나는 은사자상은 그에게 성취의 마침표가 아닌, 다음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할 질문의 출발선이다.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닌,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는 이 다짐이야말로 이창동이라는 감독이 시대의 스승으로 존재하는 이유다.
가능한 사랑을 향하여
이 세 마디가 모여 만든 진폭은 결코 작지 않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다큐멘터리 연출가 부부라는 엇갈린 삶의 궤적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마침내 피어나는 구원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우리는 왜 계속해서 타인을 이해해야 하며, 미워하고 끊어지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다시 사랑에 도달해야 하는가? 이창동 감독은 자신의 수상 소감 그대로, 뻔한 위로나 자극 대신 정직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일깨운다. 은사자상이라는 영예보다 더 빛나는 것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으려
그의 고집스러운 질문들이다.
영화가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와 삶의 영역으로 확장될 때, 그가 남긴 세 마디는 관객들의 마음에 촛불처럼 밝게 켜진다. 타인과 분리된 이 메마른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참된 관계와 사랑의 가능성을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