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가 키아프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이유 7 가지

매년 가을이 되면 서울 코엑스는 미술계 인플루언서, 컬렉터, 갤러리 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대한민국 대표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세계적인 아트페어 브랜드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동시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수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들, 연예인 컬렉터들의 방문 뉴스까지. 겉으로 보면 한국 미술시장이
드디어 글로벌 중심에 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축제의 열기가 가라앉고 난 뒤 씁쓸함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술시장의 성장을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관람객이자 비평적인 시선을 가진 입장에서 "내가 키아프를 선뜻 좋아하기 어려운 7가지 이유" 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프리즈(Frieze)의 그늘에 가린 주객전도 현상
2022년 키아프가 프리즈와 손을 잡았을 때만 해도 'K-아트의 글로벌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주객전도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관람객과 해외 바이어들의 발길, 나아가 언론의 조명까지 대부분 프리즈 섹션으로 쏠립니다. 글로벌 거대 갤러리들이 들고 나오는 거장들의 작품 옆에서 키아프는 마치 '곁다리 행사'나 '동네 장터'처럼 느껴지는 착시마저 생깁니다. 공동 개최가 오히려 키아프의 브랜드 가치와 고유한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2. 백화점식 디스플레이와 기획력의 부재
아트페어가 기본적으로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Market)'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시장에도 격이 있습니다. 키아프의 부스들을 둘러보다 보면 심오한 기획이나 담론은 사라지고, 오직 '팔기 위한 작품'들이 빽빽하게 벽을 채우고 있습니다.
동선은 복잡하고, 부스 간 구획은 답답하며, 작품 간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백화점식 늘어놓기' 디스플레이가 눈을 피로하게 만듭니다. 미술관 같은 깊이 있는 감상을 기대하긴 어렵더라도, 최소한의 전시 기획적 완성도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3. 트렌드 따라가기에 급급한 작품의 하향 평준화
최근 몇 년간 키아프를 둘러보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어디서 본 듯한 작품'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특정 작가나 캐릭터 기반의 Pop한 스타일, 알록달록한 자극적인 색감의 작품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
이듬해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들이 대거 쏟아져 나옵니다. 자본의 논리에 맞춰 '잘 팔리는 그림'만 내걸다 보니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독창성은 사라지고, 작품의 하향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4. 거품으로 가득 찬 상업주의와 투자 광풍
"이 작가 그림 사두면 오른다." 아트페어 현장에서 흔히 들리는 대화입니다. 키아프는 점차 미학적 감상의 장이 아닌,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투기장'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물론 미술시장의 선순환을 위해 자본의 유입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미학적 가치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시세 차익'과 '재테크'에만 몰두하는 분위기는 미술시장의 건강한 자생력을 해치고 거품을 형성합니다.
거품이 꺼졌을 때 그 피해는 결국 신진 작가들과 진짜 컬렉터들에게 돌아갑니다.
5. 비싼 티켓값 대비 부족한 관람객 서비스
키아프의 입장권 가격은 매년 상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관람객을 위한 편의 서비스가 개선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휴게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여 다리가 아픈 관람객들이 바닥에 앉아 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인원 통제나 동선 관리가 매끄럽지 않아 쾌적한 관람이 불가능하며, 도슨트 프로그램이나 작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는 인프라도 부족합니다. 높은 비용을 지불한 관람객에 대한 배려보다,
오직 거래량과 관람객 수라는 실적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6. 국내 신진·실험적 작가 외면
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행사라면 마땅히 한국 미술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진 작가들과 실험적인 대안 미술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소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키아프의 높은 부스 참가비 때문에 검증되고 안전한(잘 팔리는) 중견·중진 작가 위주의 출품이 이어집니다. 젊고 도전적인 작가들이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한국 미술계의 허리를 얇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도전적인 시도보다는 안전한 상업적 선택만을 고수하는 태도가 아쉽습니다.
7. K-아트의 알맹이 없는 수식어화
'K-팝', 'K-콘텐츠'의 흥행에 얹혀 'K-아트'라는 슬로건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키아프가 세계 미술시장에 선보이는 'K-아트'의 정체성은 모호합니다. 단시일 내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함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만의 철학이나 담론 형성 없이,
그저 '한국에서 열리는 큰 장터'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지금이야말로 독자적인 담론을 제시해야 할 때인데, 내실 없는 홍보용 수식어로만
K-아트를 소비하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글 을 마 치 며
키아프를 비판하는 것은 이 행사가 사라지길 바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로서 진정한 내실을 다지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프리즈라는 거대한 파도 옆에서 키아프가 단순한 '양적 성장의 착시'에 안주하지 않고, 미술의 미학적 가치와 상업적 성과가 건강하게 균형을 이루는 진정한 축제의 장 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봅니다.